책 읽어주는 남자 (with 협독조합)

단순히 어린 소년과 성인 여성의 사랑을 다루는 소설인가 싶었지만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책이었다. 협독조합 독서 모임 8월의 책, 책 읽어주는 남자

아래는 많은 부분,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그저 정리하고 한 두 스푼 정도 내 생각을 담은 조촐한 감상이다.

책 읽어주는 남자 (The Reader, 1995)

저자 : 베른하르트 슐링크(BERNHARD SCHLINK)


한나는 미하엘에게 책을 읽어 달라고 한다.

꼬마야, 넌 목소리가 예쁘잖니, 난 내가 직접 읽는 것보다 네가 읽어주는 것을 듣고 싶어.

책 읽어주는 남자, p59

한나는 강제 수용소에서 일한 간수, 나치 전범이었다. 수용소에서 한나는 어린 소녀들을 자기 방에 데려와 역시 책을 읽게 했다.

한나는 문맹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결코 이야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법정에서 자신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는데도 아무 말 없이 형량을 인정한다.

한나에게 책은 어떤 존재였을까? 그리고 왜 어린 소년/소녀들에게 책을 읽어 달라고 부탁했을까?

한나는 미하엘 아버지의 서재에서 책들을 바라보며 분명한 거리감을 드러낸다. ‘스스로를 불청객으로 느낀 듯 했다.’

한나에게 책이란 어린 시절에 거세 당한 교육의 기회에 대한 동경이지 않았을까. 현재의 자신은 다가갈 수 없지만 그래서 어린 아이들의 목소리로 책을 읽고 싶었던게 아닐까 생각한다.

속 표지가 샛노랗고 예뻤다

존엄

우리는 독일에서 행해지는 전범 청산에 대한 이야기들을 접하며 일본과 많은 비교를 하고는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한데,

왜 독일인은 이토록 처절하게 과거에 대해 청산하려고 할까?

우리 모두는 우리의 부모들에게 수치의 판결을 내렸다. 우리가 그들을 고발한 내용은, 그들이 1945년 이후에도 그들 주변에 있는 범죄자들의 존재를 묵인했다는 것이다.

책 읽어주는 남자, p120

독서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독일인들은 홀로코스트에서 600만 유대인을 학살했다. 만약 그들이 단순히 유대인을 가둬 두기만 했다면 이 정도로 처절하게 전범 청산을 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홀로코스트에서 말살된 것은 인간이 가진 존엄성이었고, 독일인들은 그에 대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라는 것.

이 책은 인간의 존엄을 다룬다. 자존심이라고 해도 좋다.

한나는 존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문맹임을 밝히지 않는다.

미하엘의 아버지는 “내가 그들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좋다고 여기고 있는 것보다 더 우위에 두려고 하면 절대 안 된다.” 고 말하며 타인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 필요함을 말한다.

또한 한나는 글을 익히며 자신이, 자신이 속한 집단이 행한 과오를 알게 된다. 글을 익히는 과정은 존엄을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깨달음을 얻은 한나는 자기 관리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인다.


목욕

목욕은 상징적인 단어다. 죄를 씻음. 다시 태어남. 기독교 문화에서는 세례로 대표 될테고, 동양 철학에서도 목욕은 다시 태어남을 상징할 때가 많다.

물론 상당히 에로틱하기도 하다. 🙄

한나는 구세대이다. 나치 전범, 죄를 범한 세대다. 미하엘은 새로운 세대이지만 구세대의 죄를 뒤집어 썼다.

한나는 연탄재로 범벅이 된 미하엘을 ‘벅벅’ 씻겨준다.

구토를 한 미하엘을 손수 씻겨준다.

미하엘은 처음에는 목욕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점차 이를 즐거워하게 된다.

자극적인 문장들은 30대의 여성과 10대의 소년에 주목할 수 있겠지만, 작가가 미하엘을 15세의 소년으로 설정한 배경에는 이런 사고의 흐름도 있었겠구나 생각 된다.


상황

그러니까 저는 …. 제 말은 …. 하지만 재판장님 같았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책 읽어주는 남자, p144

일반인들을 뽑아 교도관과 수감자 역을 나누어 맡게 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이란게 있다. 조작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역할과 자리가 사람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인사이트를 남긴, 유명한 실험이다.

물론 명령에 따랐다는 말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신에게 묻겠습니다. 무저항은 죄입니까?

인간 실격, p130 (민음사)

면죄부를 던지는 책이라는 의견도 있었는데, 그래도 그 이상으로 상황에 대해 공감하며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았나 싶다. 말그대로,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를 치열하게 고민하게 하는 책은 아닐까.

무지와 외면에 대해 생각하게도 된다.

물론 이해를 할 수는 있겠으나 면죄의 조건은 되지 않겠구나라는 생각.


사랑과 화해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이 좋은 점은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는 점인데, 한나와 미하엘간의 사랑으로도 구세대와 새로운 세대간의 사랑으로도 해석된다는게 매력적이다.

그리고 해석에 정답이 어디있겠는가.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다. 구세대는 새로운 세대가 그저 사랑스럽기 마련이다. 특히나 내 과오를 뒤집어 쓴 모습에 미안함을 느끼고 책임의식을 가지게 될 수도 있겠다.

아래 세대는 위 세대에게 보통 양가 감정을 가지게 마련이다. 사랑, 부정, 그리고 연민. 그러나 결국은 거부할 수 없고 포용하게 된다.


마무리

개인적으로는 미하엘이 감옥에 있는 한나에게 카세트 테이프를 전달하는 장면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제목을 ‘더 리더’로 짓기까지 한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다.

왜 미하엘은 한나를 적극적으로 변호하지 않았을까. 왜 미하엘은 한나에게 답장을 쓰지 않았을까. 등 많은 의문을 가지게 되지만 참 담담하고 아련한, 복잡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이 전해진다.

미하엘이 법정에서 한나를 변호했다면. 미하엘이 한나에게 답장을 썼다면. 미하엘이 한나에게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한나가 석방된 후 미하엘과 행복하게 살았다면.

시원 시원한 소설은 되었겠지만 지금처럼 오래 곱씹을 수 있는 작품이 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늘 그랬지만 이번 모임도 참 감사하고 즐거웠다. 협독조합 감사합니다.

독서 모임 노트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