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빈을 통해서 본 톨스토이의 고민
- 안나 까레니나 (상, 하)
- 저자: 레프 똘스또이
- 역자: 이명현
- 출판사: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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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인 퀘스천 (협독조합)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 각각으로 불행했다.” 첫 문장이 말하는 행복한 가정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레빈이 얻은 깨달음이 안나에게 적용되었다면, 안나도 행복할 수 있었을까요?
협독조합 리드인 퀘스천
안나 까레니나를 읽지 않은 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유명한 문장이다.
안나 까레니나에서는 안나의 가정과 레빈의 가정이 각각 묘사되는데, 톨스토이가 처음부터 이 두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다는 근거가 이 문장에 있다고도 한다.
안나의 가정과 레빈의 가정은 무엇이 달랐을까. 톨스토이는 결국 무엇이 중요하다고 봤을까.
나는 이 답이 레빈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레빈의 고민
레빈을 보면서 공감이 많이 됐다. 키티와의 연애에 실패했을 때는 당장이라도 죽을 듯이 찌질하게 굴다가도, 결국 구혼에 성공하며 구름 위를 걷는 듯 즐거워하는 모습은 웃기면서도 정감이 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삶에 대해 계속 고민하며, 답을 갈구하는 모습이 요즘 내 모습과 닮아 보이더라.
〈나는 일하고 있고, 무언가를 해내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서 모든 게 결국은 끝난다는 걸, 죽음이라는 걸 잊고 있었어.〉
『안나 까레니나』 레프 똘스또이 저 / 이명현 역 / 열린책들
바로 자신이 삶에 있어서 하나의 작은 조건을 잊고 있었다는 것 ─ 즉, 죽음이 닥쳐와 모든 게 끝나리라는 사실, 따라서 아무것도 시작할 가치가 없고 어찌해도 이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으며, 지금에서야 그것을 통찰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 정말 끔찍하지만, 사실이 그러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살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레빈은 절박한 심정으로 자문했다.
『안나 까레니나』 레프 똘스또이 저 / 이명현 역 / 열린책들
형의 죽음을 경험한 레빈에게서는 허무주의, 니힐리즘 적인 생각들이 자주 나타났다.
살아서 뭐하나, 죽게 되면 끝 아닌가라는 생각. 누구나 이런 생각들을 한 번쯤은 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건강하지 않음도 잘 알 것이다.
레빈 역시 이에 대해 극복하려고 노력하긴 했으나, 썩 좋은 방식은 아니었다.
죽음이 오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삶을 마저 살아 내야만 했다. 어둠이 그의 모든 것을 덮어 버리고 있었지만, 다름 아닌 그 어둠으로 인하여 그는 그 속에서 자신을 이끌어 주는 유일한 끈이 바로 자신의 일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따라서 그는 있는 힘을 다해 그것을 붙잡고 거기에 매달렸다.
『안나 까레니나』 레프 똘스또이 저 / 이명현 역 / 열린책들
어떻게든 마저 살아 내기, 자신의 일을 붙잡고 매달리기. 물론 이 당시의 레빈이라면, 이 시점에서 레빈이 내릴 수 있는 결론으로는 가장 좋은 답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이걸로 충분할까?
레빈의 성장
그러나 지금은 아내가 곁에 있는 덕에, 그 감정이 그를 절망으로 몰고 가지는 않았다.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고 사랑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사랑이 자신을 절망에서 구해 주었음을, 절망의 위협 속에서 그 사랑이 더욱더 강해지고 순결해졌음을 그는 느꼈다.
『안나 까레니나』 레프 똘스또이 저 / 이명현 역 / 열린책들
그가 알고 느낄 수 있었던 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1년 전 현청 소재지의 호텔에서 니꼴라이 형의 임종 때 벌어졌던 일과 유사하다는 것뿐이었다. 그것은 슬픔이었고 이것은 기쁨이었다. 그러나 그 슬픔도 이 기쁨도 똑같이 삶의 평범한 조건을 초월하여 존재하며, 일상 속에서 고차원적인 무언가를 엿볼 수 있는 틈새라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안나 까레니나』 레프 똘스또이 저 / 이명현 역 / 열린책들
레빈은 키티라는 존재를 만나고, 아이를 가지게 되며 한층 성장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키티가 하드 캐리했다 생각한다. 😂
이 때 레빈은 단순히 현학적인 생각들에서 벗어나, 보다 실증적인 무언가를 손에 쥐었다. 그러나 아직도 알 듯 말 듯, 그래서 진리란 무엇인데? 라고 하는 갈급함은 남아 있다.
레빈의 깨달음
〈자신의 필요를 위해서가 아니라 신을 위해 산다고 했지. 어떤 신을 위해 산단 말인가? 신을 위해서라니, 그가 한 말보다 더 무의미한 말이 과연 있을까? 그는 자신의 필요를 위해서 살면 안 된다고 했어.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 우리의 마음이 끌리는 대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면 안 되고, 뭔지 모르지만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정의할 수 없는 그런 불가해한 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 내가 표도르의 그 단순한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건가? 아니면 이해했지만 그의 정당함을 의심하는 건가? 그의 말 속에서 어리석고 불분명하며 정확하지 못한 것을 찾아내기라도 한 건가?〉
『안나 까레니나』 레프 똘스또이 저 / 이명현 역 / 열린책들
그런데 마지막 장에서 보여지는 레빈의 모습에 대해서는 다소 뜬금 없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는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아래는 협독조합 요루님의 글이다.
그래서인지 레빈의 마지막 결론은 너무나 뜬금없었다. 기껏 다 부정했던 신의 존재를 전혀 이해되지 않는 이유로 냉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많이 당황스럽고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며칠이나 고된 산고를 함께 겪으면서 레빈 만의 (혹은 톨스토이 만의) 철학이 탄생하기만을 고대하고 응원해왔는데, 돌연 출산을 포기하고 다 큰 신앙을 입양한 셈이었다. 물론 이 소설이 철학서가 되지 않기 위해서 다 담지 못했던 작가만의 이유도 분명 더 있었겠지만.
레빈의 고민은 결국 톨스토이의 고민이다. 그리고 레빈의 해법 역시 톨스토이의 해법이다.
그렇다면 톨스토이는 과연 무엇을 고민한걸까?
톨스토이의 고민
톨스토이와 같은 시대, 또 한 사람 잊을 수 없는 작가가 있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가 살아간 1800년대는 그야말로 격변의 시기였다. 과학 문명이 급격히 발전하고, 기독교의 영향력은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삶은 빠르게 변해갔지만, 사람들은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변화는 거셌고, 사람들은 가치의 진공 속에서 떠돌고 있었다.
이런 혼란 속에서 두 대문호는 각자의 방식으로 인간과 세계, 그리고 삶의 의미에 대해 답하려 했다.
톨스토이는 “육체적인 것으로부터 정신적인 것으로”의 이동을 보여주는 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반대로 “정신적인 것으로부터 육체적인 것으로”의 이동을 보여준다.
『문학 속의 소통과 성: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김연경 저
톨스토이가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삶, 일상, 자연, 노동을 통해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사상을 지녔다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내면의 영혼, 관념에 대한 고뇌가 인간 존재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상을 보여준다.
그래서 톨스토이의 이상적 인간은 ‘바보 이반’이나 ‘유로지비’와 같은 단순하고 욕심 없고 평화롭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의 ‘로쟈’를 통해, 인간 내면 깊숙하게 자리한 고뇌와 광기, 윤리와 죄책감의 세계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렇게 톨스토이는 레빈을 통해 자신의 이상과 해법을 보여준 셈이다. 시대적 한계로 느껴지는 부분도 물론 있으나 이런 시대적 통찰을 통해 결국 이후의 철학과 사상이 성장할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여담
여담. 아마도 죽음에 대해 고민하던 레빈을 니체가 만났다면 이렇게 답하지 않았을까.
힘든 노동을 좋아하고, 신속하고 새롭고 낯선 것을 좋아들하지만 너희 모두는 너희 자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너희가 말하는 근면이란 것도 도피책이자 자신을 잊고자 하는 의지렷다.
만약 너희가 생을 보다 신뢰했다면 너희 자신을 순간에 내맡기는 일은 그만큼 적었으련만. 그러나 너희의 내면에는 기다릴 수 있는 충분한 내실이 없고 그렇다고 게으름을 피울 수 있을 만큼 내실이 충분한 것도 아니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저 / 정동호 역 / 책세상
근면이란 결국 도피책이자 나를 잊고자 하는 의지에 불과하다. 그러니 생을 보다 신뢰하라고.
그리고
생에 대한 너희의 사랑이 너희의 최고 희망에 대한 사랑이기를. 그리고 너희의 최고의 희망이 생에 있어서 최고의 이념이기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저 / 정동호 역 / 책세상
이라고.
키티가 하드 캐리 했다는 말씀에 매우 공감합니다. ㅎㅎ
정말 키티 없었으면 레빈 어쨌겠어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