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 풍경 01

풍경 01

형석은 조용한 아이였다. 모친은 형석이 울지도 않고 좀처럼 보채지도 않는 얌전한 아기였다고 말한다. 한 번 자리에 눕혀두면 손이 가지 않았다. 집 안 분위기를 읽어서였는지, 천성이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가장이 사업에 실패하고 이곳저곳 정처 없이 더부살이를 해야 했던 모친 입장에서는 조용히 지내주는 형석이 고마웠다고 한다.

진욱은 골목대장이다. 살짝 때국물이 진 볼때기는 빵빵한 게 터지려고 하고 눈은 작지만 제법 영리해 보인다. 어린 녀석이 주먹도 제법 단단하고 목소리도 크다.

한 번은 골목길에 웬 두더지가 기어 나왔다. 멍청하게도 시멘트 담벼락 옆에서 갈 곳을 잃은 모양이다. 두더지들은 죄다 장님이라 하더니 길도 찾지 못하고 바둥거린다. 시궁쥐야 흔하게 봐왔다지만, 두더지는 또 색달랐는지 동네 아이들이 웅성웅성 모여들었다.

“야, 털이 참 곱다.”

다들 막대기로 한 번씩 쑤셔도 보고 쌔근 쌔근 볼록해지는 배도 만져보며 신기해한다. 그 와중에 ‘훅’ 하고 애기 머리통만 한 돌덩이가 훅 두더지한테 떨어졌다.

“꺅, 무슨 짓이야!”

골목대장인 진욱이었다. 이상한 소리를 내며 돌덩이에 깔려버린 두더지는 다리를 몇 번 떨더니 그대로 죽어버렸다. 아이들이 원망스런 눈초리를 보냈지만 진욱은 아랑곳하지 않고 씨익 웃으며 자리를 떴다.

진욱이 사는 집은 툇마루가 있는 디귿자형 고옥이다. 진욱네 아버지, 어머니, 삼촌, 할머니가 함께 지낸다. 어느 날인가 아침부터 소란스럽더니 바깥쪽 쓰지 않는 작은 방을 치운다고 복작거린다. 아버지 고향 친구라는 사람이 들어온단다. 슬쩍 들여다보니 살림살이는 별거 없는데 책은 한가득 실어 온다. 남자 쪽은 허약해 보이는 안경잡이고, 여자 쪽은 고생을 꽤나 했는지 얼굴이 수척하다. 안경잡이가 아버지 친구인 모양인데 한낮부터 툇마루에 술상을 차리고는 아버지와 웃고 떠들고 있고, 아내인 듯한 사람만 연신 짐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텄구만.’ 진욱은 뜻도 잘 모르면서 그렇게 속으로 혀를 찼다. 어린 눈으로 봐도 믿음직한 꼬락서니는 아니었다.

조용히 안쪽을 보니 방 안 구석에 또래 아이가 하나 보인다. 주변이 꽤나 소란스러운데도 가만히 엎드려 있는데, 뭘 하나 들여다봤더니 책을 읽고 있다.

‘찰싹!’

“정신없으니까 나가서 있어.”

진욱은 어머니한테 등짝을 맞고는 눈을 살짝 새초롬히 뜨며 ‘아야야야’ 하고 엄살을 부린다.

“얼른!”

진욱은 밖으로 나가면서 슬쩍 작은 방 안 구석을 다시 들여다본다. 아이는 바깥 소리가 신경도 쓰이지 않는지 책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진욱은 왠지 모르게 살짝 심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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