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어려운 책이었다. 한 페이지를 몇 번씩 반복하며 읽기도 했고, 중간 중간 쉬기도 했지만, 다 읽는데 두 달 가까이 걸렸다.

아직도 책을 온전히 이해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피로사회 (Müdigkeitsgesellschaft, 2010)

저자 : 한병철

규율사회의 피안에서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피로사회, 규율사회의 피안에서 중

내 의지라고 생각했고, 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인다고 생각했다. 성장과 발전이 있는 일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열정을 쏟는게 즐겁다고 느꼈고, 나 자신의 만족이 보상이 된다고 여겼다.

“스스로를 보상하거나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자아 혼자만 고립된다면, 결국 모든 관계는 파괴되고 병리학적 결과로 우울증이 따라온다.

활동적 삶

이미 니체가 말했듯이 신의 죽음 이후에는 건강이 여신의 자리에 등극한다.

피로사회, 활동적 삶 중

사람들과 만나면 돈, 건강 이 두 가지 주제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나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형이상학적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다면 나를 이상하게 볼까, 젠체한다고 볼까 두려워진다.

서사성을 지닌 죽음의 기술이 존재하지 않기에 사람들은 벌거벗은 생명 자체라도 건강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진다니, 너무나 탁월한 해석이다.

보는 법의 교육

분노는 현재에 대해 총체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분노의 전제는 현재 속에서 중단하며 잠시 멈춰 선다는 것이다.

분노는 어떤 상황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피로사회, 보는 법의 교육 중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 드물다. 많은 경우 상황을 그대로 받아 들이고, 적응하거나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멈춰 서서 ‘왜?’라는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었나.

콘텐츠들을 그저 하염없이 소비하고 있을 때도 많다. ‘즉각 반응하는 것, 모든 충동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이미 일종의 병이며 몰락이며 탈진이다.’

단순히 긍정하지 말고, 분노하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자.

우울사회

하지만 우울증은 모든 관계와 유대에서 잘려나간 상태이다. 우울증에는 아무런 중력도 없다.

피로사회, 우울사회 중

혼자서도 즐겁다며 삶을 살아가던 와중, 이 문장을 읽고 아차 싶었다. 나는 고립을 자처하고 있지 않은가? 얕고 일시적인 관계에만 에너지를 쏟고 있지는 않은가?

치유하는 피로라는 개념은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고립된 자아 혼자만이 아니라 함께, 열정을 쏟는, 상대를 향하는 피로는 무엇인가? 고양감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고립된 자아 혼자서는 느낄 수 없는 피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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