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의 위기 (die krise der narration) 인간은 완벽해지려고 하면서 스스로 낮아지고 있는 것일까? 서사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인가? 더 높아지려 하면서 더 낮은 차원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일까?

서사의 위기 (Die Krise der Narration, 2023)
저자 : 한병철
디지털 플랫폼, 삶의 기록
새 해가 되어, 삶을 충실히 기록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최근에는 애플에서 journal 일기라는 앱이 나왔다고 하여, 굳이 iOS를 업데이트하면서까지 앱을 설치해봤다.
내가 찍은 사진, 내가 가본 장소, 내가 들은 음악… 삶의 기록을 분류하고 기록하도록 도와주는 앱이다.
그러던 와중 서사의 위기(die krise der narration) 에서 이 문장을 접하고는
디지털 플랫폼의 기술적 장치는 전체 삶의 기록화에 쓰인다. 즉, 삶 자체를 모두 데이터 기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 대한 데이터가 많이 모일수록 그 사람에 대한 감시와 제어는 더 잘 이루어지고 경제적으로도 더 잘 착취된다. 자신이 그저 노는 중일 뿐이라고만 믿는 포노 사피엔스는 실제로는 완전히 착취당하고 제어당하고 있는 것이다.
서사의 위기, 설명되는 삶 중
살짝 소름이 돋았다.
나는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채 나 자신을 착취하려고 하는 중이었을까?
그러나 사실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삶을 기록하는 일은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내 삶의 조각을 어떤 주체가 모으는지가 문제인 것일까? 혹은 방식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내 삶의 기록들을 내가 스스로 주체적으로 모으며, 나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구성한다면, 이는 한병철이 이야기하는 서사에 해당할 수 있겠지?
내가 그저 내 삶의 파편들을 스토리에 휘발적으로 올리고 만다면, 이는 기억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통을 위해서 사용되는 것일테고?
삶은 정량화가 가능한 사건들로는 이야기될 수 없다.
나는 내 삶을 트래킹하는 일을 좋아한다. 광적이라고도 할만하다. 삶을 수치화하는 일이 재미있고, 지적인 욕구도 충족시키는 느낌이다.
한병철은 이에 대해 (서사의 위기)
수집된 데이터는 그래픽과 다이어그램으로 보기 좋게 요약된다. 그러나 이들은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자기는 양이 아닌 질이기 때문이다. ‘숫자를 통한 자기 이해’는 신화 속 키마이라와 같다. 이야기만이 자기 인식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준다. 나는 나 자신이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나 숫자는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못한다. ‘수치적 서사’라는 표현은 모순이다. 삶은 정량화가 가능한 사건들로는 이야기될 수 없다.
서사의 위기, 설명되는 삶 중
라며 경계한다. 순간 머리가 쿵 하고 울린듯 했다.
인간은 서사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인가?
피로사회에서 한병철은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이(천재 백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컴퓨터를 이질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긍정기계라고 부르며 부정성이 부재한 존재라고 평한다. 개인도 사회도 자폐적 성과기계로 변하고 있다고도 한다.
인간은 완벽해지려고 하면서 스스로 낮아지고 있는 것일까? 서사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인가? 더 높아지려 하면서 더 낮은 차원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얼마 전, 인디 가수의 공연을 보고서는 느낀바가 있다.
싱어 송 라이터, 이야기 할 줄 아는 아티스트였다. 이야기 할 줄 아는 재능이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점을 다시금 상기했다.
나는 작가들이 작품에 대해 전해주는 백그라운드 스토리를 참 좋아하는데, 이번 공연에서도 아티스트가 노랫말을 쓸 때의 생각들을 전해주는 부분들이 흥미롭고 좋았다.
음유시인들이 이런 류였겠지 싶었다.
세상은 정보들로 가득 차 나가며 서사를 잃어버리고 있는데, 이런 아티스트들은 참 귀한 존재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3 thoughts on “서사의 위기”